루팡의 딸
2020-07-08

하도 유튜브에 광고가 뜨길래. 대체 어떻길래 만화로 그려서 광고까지 하지?! 하고.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빌린 책. 소재는 좋았다. 도둑 집안과 경찰 집안의 로미오와 줄리엣 느낌. 킬링타임용 로맨스 소설에 추리를 첨가한 느낌이다. 때문에 초반부는 재밌게 읽었다. 특히 두 집안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하나코 파트.... 내용도 그닥 무겁진 않아서 금방 읽었다.

그러나 추리소설로써는, 글쎄.... 트릭도 허술해서 전개를 예측하기 쉽고 긴장감이 없다. 설정도 아 좀 에바지...싶던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판타지적 허용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추리' 에 중점을 두고 기대하면 안 된다.... 오타쿠적으로 서로 정체를 모르는 괴도x경찰 경찰x괴도같은거 좋아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최대 피해자는 에미리인 듯.

오버 더 초이스, 이영도
2020-01-28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하긴 하는데 사실 읽은 책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장르소설같은 상업 소설을 이렇다하게 많이 읽은 것도 아니더라. 충격이다. 그래서 어젯밤부터 오버 더 호라이즌 단편과 초이스를 읽었다.

 

뭐랄까... 심오하다. 자의를 가지고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식물이라니. 비건 또는 자연보호 관점에서 생각할 게 너무 많아진다. 감나무 태운다는 팬덤에게 하는 선전포고인가. 그런 관점도 존재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이 나와버렸다.

 

 

솔직히 너무 재밌다. 오버 더 호라이즌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필력, 캐릭터, 설정, 재치와 심오함 모두 매력적이다. 실시간 웹소설으로 봤다면 피 말려 죽었을 것이다. 특히 후반부는 쫓기듯이 읽었다. 허망한 감이 없잖아 있긴 한데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서 평점은 good.

이런 철학적 개념을 담은 글(물론 글이란 쓰는 사람의 생각이 당연히 들어가는 거지만, 떠먹여주지 않으면 알아채지도 못한다)을 볼 때마다 내 식견 좁음에 감탄하고 침음하게 된다. 식견만 좁은 게 아니라 앞선 내용도 잘 기억 못해서 풀과 티르의 대화는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위대한 침묵, 해도연
2019-12-12

해도연 작가님 책은 처음 읽어본다. SF 중단편 모음집.
반전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함. 반전을 알고 나서 두 번, 세 번 읽어야 숨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따뜻한 세상을 위해

이렇게 과학이 발달했는데도 인간들은 다른 인간을 소모품으로 대한다는 게 좋았다. 보통 미래 하면 로봇, 안드로이드,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또는 멸망시키는....)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던가? 따뜻하다는 제목 아래 최첨단 과학 기술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은 이기적이고 무서운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다니.
읽으면서 룬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되게 뜬금없긴 하지만.... 데모닉 편에서 조슈아는 항상 자신에게 지워지는 책임과 꼬리표에서 도피하고자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정말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인형(카르디)을 마주하게 되고, 인형에게 뺏긴 자기 자리를 되찾으려 음모와 맞서 싸우는 그런 희망찬 소년만화같은 줄거리인데.... 주인공을 보면서 카르디가 생각났다. 자신이 조슈아라고 철썩같이 믿고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인 줄 알았는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그 자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당연히 자신이 진짜인 줄 알았는데 실상 자신은 인형이고 인형술사의 조종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의 자리를 뺏겨야 한다고?! 아마 주인공의 충격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위대한 침묵
흔하고 멋진 서사. 누구보다 인간적이기 때문에 욕망이나 감정에 휩쓸리고 실수를 하고 파국을 불러온다. 작품을 읽고 다시 생각해 보니 딱히 인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지성과 감성이 있는 생명체의 근본적인 문제랄까. 광대한 세상에 지구에만 생물이 존재한다면 공간 낭비라는 말에 동의하고 어딘가에는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딘가에는 인간보다 진보한 문명을 이룬 외계인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 지구인이나 외계인이나 서로를 발견 못 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이 이야기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주는 침묵한다, 침묵은 위대하고.
나는 희생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사실 좋아한다. 슈퍼히어로물을 과할 정도로 좋아하고. 슈퍼히어로들은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 그게 꼭 자기희생이란 방법으로 돌아가서 싫은 거지. 희생을 강요하는 주변도 싫고. 후반부에서는 미후에게 과몰입했고 열쇠를 던지는 장면에선 쾌감이 느껴졌다.
주인공인 미후가 과학적 지식이 별로 없다는 점이 좋았다. 과학자들끼리 신나서 과학 얘기를 하면 약간 저 빼고 멘션해주세요 같은 느낌이 돼서. 중간에 '알아들을 수 있게 요약해줄래?' 하고 끼어드는 캐릭터들을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