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듀나
2020-03-23
애증의 그 영화. 본권에 수록된 '커플 위장 탈출법' 항목 중

마찬가지로 사 둔 지는 꽤 된 책이지만....
킬링타임용으론 나쁘지 않은 책.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쓰이는 클리셰들을 정리하고 그 수법에 대해 비판하거나 클리셰가 생기고 아직까지도 쓰이는 이유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선 공감되는 것들이 많았다. 아는 작품이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그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기도 하고. 사실 아는 작품보다 모르는 작품이 더 많았지만.
새삼 작가의 짬밥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듀나 소설들을 읽을 때도 느끼긴 했지만 정말 많은 데에서 아이디어를 따 오는 구나. 나도 이렇게 깊고 넓게 지식을 쌓고 싶어진다.

 

작가 특유의 그 말투가 너무 좋다. 트위터나 리뷰 글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특유의 그 시니컬한 말투. 이 말투 때문에 듀나 작가가 활동을 많이 해 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희, 반-바지
2020-03-22

트위터 구독도 하고 있는 반-바지님의 SF 단편 만화집. 사 둔 진 오래 됐지만 왜 이제야 펴 보는지.... 절대자의 딸들 시리즈가 제일 재밌었다.
: 우주를 거닐며 천체를 뛰놀던 사람이 그 생활에서 쫓겨나 땅 위에서 한낱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면 쉽지 않을 것 입니다.

내게 살짝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도 많았긴 했지만. 각 편이 끝나고 나서 글쓴이 각주에 달린 말들이 재밌었다.
과학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지기도.

전자책 말고 종이책으로 살걸 싶기도 하다. 전자책으로 보면 글씨 크기 조절 안 돼서 눈 아파....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2020-03-20

글쎄....
분명 한 6년 전쯤 읽었다면 감동받고 눈물흘렸을 텐데 그때와 지금의 내 인식이 하늘과 땅만큼 달라져버렸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 전 까지만 해도 보호사에 의한 병원 내 성폭력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항의해도 정신병자의 말이라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으니까.
2020년에 읽으려니 힘든 작품. 정신병원은 세뇌와 고문 시설이라는 공포적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까 🙄 지금도 뭐. 비교적 최근 개봉한 곤지암이라는 영화를 생각해보면 정신질환자와 정신병원에 대한 인식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물론 수명이 범죄자로 오인받아 간 곳이라는 걸 생각하면 예비범죄자 대하듯 군 건 뭐.... 납득이.... 되.... 나?
물론 다큐멘터리가 아닌 청춘드라마니까 큰 신경을 안 쓰고 싶긴 하지만....

그 생각 때문에 읽는 내내 이입이 안 됐다.
7년의 밤은 쭉쭉 읽어졌는데. 물론 책의 초반부가 배경설명을 하고 있어서 읽는 데 진이 빠지는 건 맞다. 후반부는 확실히 전개가 빠르다.
총평은 나쁘지 않았으나 2020년에 보긴 괴로워서 bad.

죽은 애인에게서 메일이 온다, 세람
2020-01-09

출간되고 나서 트위터에서 입소문 탈 때 볼까말까 고민이 많았다. 내가 BL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진입장벽적인 문제가 있는 거지 일단 비엘러 부녀자긴 했다.

아무튼 결국 샀다. 인터넷 괴담이라는 게 신선하기도 하고. 그 얼마 전에 한창 지인들이랑 밤새 괴담 읽고 그래서 그런가. 괴담에 기대를 걸고 구매한 만큼 H신에서는 관심이 없었어서.... 후루룩 넘겨버리고 외전도 중간에 읽다 말았다. 그치만 귀접에서는 좀 혹하긴 했고. 답 없는 빻취....

편집이 대단하다고 입소문을 탔는데 실제로도 대단했다.... 책 읽는 게 아니라 인터넷 익명 사이트 썰 읽는 것 같고. 그리고 뭣보다 이 작가님 남초 사이트 고증(ㅋㅋ)이 너무 대단했어서 기억에 남는다.

수가 불쌍해. 그치만 결국 행복해졌으니 됐으려나 싶어진다.

그런데 평이 왜 not bad 냐면.... 앞서 말했듯 나는 1차 BL에 거부감이 있고 패턴이 반복되는 게 눈에 너무 보여서. 1권은 숨도 못 쉬고 몰입해서 무섭다고 징징거리며 봤는데 2권은 그냥저냥. 무섭지도 않고 내용도 뻔하고. 작가님이 할리킹 소재를 좋아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공이 좀.... 과했다. 무엇보다 악역(?)이 너무너무 보기 괴로운 부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소재의 신박함과 편집의 신기함 때문에 후하게 준 것.

 

최근 조아라에서 비슷한 형식의 소설을 또 연재하시는 것 같아서 일단 선작해뒀다.

 

기계 너머의 몽상소녀, 무라마츠 마리
2020-01-07

지인한테 추천받아서 봤다. 음침한 미래 같은 SF풍 라이트노벨. 삽화도 몽글몽글 귀엽다.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약네랜 작가였다.

중반부는 늘어진다는 느낌이 있었고, 이 장면 꼭 필요한가? 싶은 것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아무튼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타쿠 라이트노벨이라고 의식하고 보면 꽤 잘 쓰인 SF 소설같고, SF 소설이라고 의식하고 보면 너무 오타쿠 라이트노벨같고. 사실 아쉬운 부분이 많긴 한데.... '라이트노벨이 이 정도면 뭐' 하는 느낌으로 넘어가게 된다.

뻔하다면 뻔한 전개랑 결말이긴 했지만 헤테로 CP적으로 불타오르는 곳이 군데군데 있어서 후반부에서는 과몰입했다. 그래서 주임은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2020-01-01
본권에 수록된 공생 가설 중

올해 첫 책. 리디북스 포인트 충전한 김에 구매했다. 작년에 말 많아서 꼭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집. 가장 인상깊던 에피소드는 '공생 가설'과 '감정의 물성'.

본권에 수록된 감정의 물성 중

철학적이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글들이었다. 우리가 인간성이라 부르는 건 무엇인가? 인간성은 어디서 오는가? 과학으로 만들어진 인공 지성체는 완전하게 인간을 모방할 수 있는가?

SF를 좋아하는 이유야 많지만 큰 이유는 과학과 풍부한 상상력 사이를 메우는 건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학 기술의 사실성이나 전망을 나열하는 거라면 논문을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상상력과 과학 사이를 인간의 감성과 인간 간의 갈등으로 메워야 비로소 SF 문학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는 과학과 기술 사이의 윤리성이나 과학이 인류 소통과 교류를 위한 수단이라는 느낌의 소재들. 권내에 수록된 다른 작품인 '나의 우주 영웅에 대하여'나 '관내분실' 역시 후자에 속하는 이야기인지라 재미있게 읽었다.

감정의 물성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감정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제법 매력적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감정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던가. 그렇게 이름을 붙여 나름 구체화한 관념을 잘라내버리고 싶어하기도 하고 으스러뜨리고 싶어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위안을 얻는다. 우울할 때 슬픈 영화를 보거나 슬픈 노래를 듣듯이. 구체적인 형태를 띈 '감정'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로부터 알게모르게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아 좋았다.

증명된 사실, 이산화
2019-12-11

이산화 작가의 SF 미스터리 단편 소설집. 출판사 아작.

 

 사실 이 작가님 작품은 브릿G에서 공개했던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로 처음 접했다. 당시 트위터가 뒤집어졌던 게 생각남. 개인적으로 '오펜하이머' 도 '텔러' 도 여자라고 생각해서 백합적으로 퍼먹었던 기억.

고등학교 동창이 과학 좋아하고, 미중년 좋아하고, 과학자 중에서는 오펜하이머를 좋아했어서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를 보면서 오퍼시티 40%로 그 친구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친구는 SF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보고 염세주의적이었다는 점까지 완벽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취향에 맞았던 건 단편집 제목이기도 한 '증명된 사실' 이었다. TRPG가 유행하기 전부터 러브크래프트를(겉핥기로) 좋아했다. 신화적이고 으스스한 분위기인 것도 있지만, 거대하고 엄청난 존재 앞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극복할 수 없는 두려움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라는, 그러니까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를 좋아해서였다. 증명된 사실은 오컬트와 과학을 적절히 섞어 비현실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공포: 죽음에 대한,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공포를 상기시킨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끝없는 공포.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와 '한 줌 먼지 속' 은 배경도 배경인지라, 몰입하기 쉽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수능을 바라보며 학창시절을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시와 학교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테니까. 묘사가 리얼해서 작가의 회한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문체에 과학적으로 엄청난 지식이 없어도 술술 읽히는 재미를 겸비했다고 생각한다. 원체 좋아하던 장르이기도 하고. 5점.

 

 

 

아래는 보면서 감명깊던 구절들.... 인데 '한 줌 먼지 속' 위주. 천문 좋아하고 학생 시절에 좋은 기억이 없어서 그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